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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李世基的中国缘" 서평
"현대 중국 외교론"저자이신 홍정표(미야자키국제대학 교수,중국 북경대 박사학위)는 李世基 회장의 "李世基的中国缘"(중국어판)을 읽고 아래와 같이 서평을 보내왔습니다.
 
[서평]:
 

李世基 ; 牛林杰 , 李世基的中國緣』香港:大公報出版有限公司, 2013.<?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I

한반도의 통일과 중국,” 이는 저자가 일생을 견지하여온 명제다. 15세의 소년이 미국에 저항하고 북한을 도운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구호 아래 한국전쟁에 참가한 중공군의 중국인을 처음 접한 인연과 한반도의 분단은 그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실천하고 생각한 것이 통일과 중국에 대한 화두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첫째, 모든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국가관계에서도 상호 신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꽌씨(关系) 문화가 지배하는 중국사회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둘째, 글로벌화하는 지구촌과 급변하는 중국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중국을 모르고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중국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2012 8, 世基의 중국관계 20년』이 한국의 ㈜중앙books에서 출판된 1년 후, 홍콩에서 중국어판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언론을 통하여 접해오던 저자인 대선배를 2014 5 3일 오후 3:30에 처음으로 만나뵙고 이 책의 중문판『李世基的中國緣』을 선물로 받았다. 바쁜 강의 중에 짬짬이 읽으면서 중국에 대한 내용을 중국어로 읽으면서 중국 특유의 인상을 느낄 수 있었으며, 저자의 중국에 대한 경험과 깊은 이해, 그리고 이를 번역한 니우린지에 (牛林杰) 교수의 높은 수준의 중국어 표현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어판은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지루하지 않게 알맞은 내용으로 흥미가 있으면서도 심도있게 소주제로 분리하여 다루어 졌다. 1장은 과거에 대한 주제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내막을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갈등을 통하여 설명하고, 대칭이 되는 제8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주제로 동북아경제공동체 구상에 대한 생각을 다루어 경험에 바탕한 아카데믹한 학자의 풍모를 느끼게 하였다. 2장에서는 중국굴기와 동북아질서의 변화를 다루고, 3장에서는 한중관계에서 남북통일을 위한 한국이 가져야할 전략적 사고를 구상하고 있다. 4장은 한국기업의 중국진출 문제를 다루고, 나아가 중국인의 문화를 통해 어떻게 중국과 관계를 맺는 가를 재미있는 경험과 예로서 설명하고 있다. 5장에서는 중국의 친구들을 사귀고 진정으로 이를 잘 유지해 온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인은 한 번 친구가 되면 생명을 준다는 예를 보여주고 있다. 6장은 중국지도자 후진타오, 시진핑, 웬자바오의 풍모와 지도자로서의 성장 과정을 비교하였다. 7장에서는 한중친선협회를 통한 한중우호활동과 제주도 서귀포 서복(徐福)공원 건립을 통해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높인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II

1장의 중국의 한국전쟁 참가원인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전통주의 시각 즉 북한과 소련 및 중국이 협력하여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과, 1970년 대 미국의 부르스 커밍스(Bruce Comings)가 주장한 소위 수정주의 시각인 한국과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하게 하였다는 시각, 그리고 1990년 대 이후에는 전쟁발발의 원인을 입체적으로 연구하는 추세다. 저자는 한국전 원인에 대하여 케네스 왈츠(Kenneth N. Waltz) 1954년에 발표한 저서(Man, the State, and War)에서 전쟁원인을 분석하는 3차원 중 개인수준, 즉 인식(perception)의 수준에서 스탈린과 마오쩌둥 간의 갈등을 연구하여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을 재미있고 깊이있게 분석하였다. 정치리더 혹은 정책결정자들의 인식’ ‘선택’ ‘행위가 정책결정과정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연구한 학자적 예지와 중국을 접해온 경험에 바탕하여 장차 한국에 의해 통일될 한반도는 다섯 가지 점에서 중국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한반도의 비핵화와 개방은 중국이 동북아의 평화질서를 주도하게 할 것; 둘째, 일본 우익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유도하여 군국주의를 예방할 수 있고; 셋째, EU NAFTA와 같이 동북아지역에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으며; 넷째, 한미동맹에 버금가는 한중전략동반자관계를 통해 중국의 안보부담을 덜어줄 수 있고; 마지막으로 중국에 부담이 되는 탈북자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중국의 굴기와 동북아질서변화에서 그는 중국굴기의 원동력을 네 가지로 분석하였다. 중국의 통일과 독립을 가져온 마오쩌둥의 경제실패와 교훈에 따른 덩샤오핑의 성공적인 개혁개방, 공산당 정부의 강력하고 효율적인 지도력과 실용주의 경제정책의 결합,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세계화, 그리고 중국이 안정된 주변 환경을 모색하면서 역사적 기회를 잡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데 있다고 보았다. 저자는 2010년부터 시작한 태평양/아시아로의 미국의 재균형정책(rebalancing)과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A2/AD전략(反介入 or 海空一体)으로 인하여 동북아지역에서 중국과 미국의 충돌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긴장이 양국간의 전쟁으로는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는 첫째, 양국은 무력에서 상호확실한 공멸(MAD) 상태에 있고, 경제에서는 상호의존과 취약성이 양국의 협력을 필연적으로 하고, 양국이 상호간의 이해와 투명성 그리고 세계언론의 중요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굴기는 동북아국제질서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중미관계가 소극적으로 발전하면 한미동맹의 강화와 북중관계의 강화를 초래하며, 한미관계와 북중관계가 각기 강화되면 남북관계는 소원해지게 된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에는 이미 100 여년 전에 안중근의사가 말한 한중일 3국협력이 필요하며, 나아가 진정한 동북아의 평화발전을 위해 북한의 개혁개방과 핵무기의 해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중국과 한국은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해야하며, 나아가 한국은 중국과 미국 관계에서 신뢰받는 중재 및 협력자 역할을 하여야 한다. 

3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남북통일의 길에서 저자는 중국과 한반도관계를 다루고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지정학적 관점은 1950 10 4일 마오쩌둥이 한국전쟁 참여를 위한 최종회의에서 입술이 없으면 이가시리니(脣亡齒寒), 가정을 보호하고 국가를 방어하자(保家衛國)”며 참전을 설득하였다. 2010 5월 당시 중국의 총리 웬자바오(溫家寶) NHK와의 대담에서 성문에 불이나면 재앙이 성안의 연못에 있는 고기에 미친다(城門失火, 殃及池魚는 고사성어를 예로 들면서, 북한은 중국에 대해 병풍으로서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한반도와 중국의 역사에서 증명되고 있다. 임진왜란과 청일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후기 냉전시기에 있어 안보는 미국과 밀접하고 경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한국이 기존의 패권국 미국과 굴기하는 중국 어느 하나도 경시할 수 없다. 이는 이명박정부 시기에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의 방문 순위와 이들 국가에 파견하는 비중있는 대사의 선별문제 등에서 중국을 홀대한 외교정책이 천안함사건 연평도사건 한국 외교관의 상해 여성과의 추문 그리고 김정일 사후의 후진타오의 조문 등을 통해 양국관계에서 한국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하였다. 한미동맹을 공고히 하면 중국이 한국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기대와 사고는 굴기하고 있는 중국에 대하여 이제는 전략적이거나 방법 상에서 맞지 않다. 한국은 중국이 북한과 밀접하여 북한에 기우는 것을 우려하듯이 중국 또한 한국이 미국과 밀접하여 미국에 편향하는 것을 우려한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양국관계는 성년의 관계로 접어들었다. 한국외교가 직면한 최대 과제는 튼튼한 안보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역사적 안광과 외교적 통찰력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여 중국에 대하여 전략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과 혼란 그리고 핵을 바라지 않는다(不戰, 不亂, 無核)” 이는 한국정부가 추구하는 정책과도 일치하며 한중 양국이 협력할 공간이 매우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한국통일의 과정결과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통일과정에 있어서 대화를 통한 평화적 방법과 북한의 위기 시에 한미의 대응방법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결과로서 한민족의 자결에 의한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적대적이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중미관계가 극단적인 대항상태가 되지 말아야 하며, 한국은 사전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4변화중의 중국: 중국인과 중국문화에서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전략에 대한전략을 설명한 후, 이어 중국인의 문화와 기질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광활한 중원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수많은 내란과 외침을 겪으며 생존해온 중국인은 법제도에 앞서 인간관계를 믿는다. 중화민족은 강한 민족적 영웅감이 강하여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며, 자부심과 우월감이 강하다. 따라서, 중국인을 만날 때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상처에 아품을 주거나 체면을 해하지 말아야 한다.

중국인은 현실(現實)과 공리(功利)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학문도 실천이 중심이다. 따라서, 학문의 목적은 실사구시를 통한 경세치용에 있다. 중국인은 정확한 계산과 철저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중국인은 돈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하다. 중국 속담에 돈은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하며, 중국 고대 진나라(晉國)의 루바오(魯褒)는 그의 전신논(錢神論)에서 돈은 귀가 없어서 모략을 꾸밀 수 있다고 하였다. 중국의 도교사원에서는 재부상(財神)을 모신다.

또한 중국인에게는 농후한 인본사상을 볼 수 있다. “인의예지충효사상이다. 그들은 추상의 개념으로 인간관계를 유도한다. 관위(關羽)가 충효사상의 상징이다. 현재 시진핑의 중국을 포함하여 고대부터 여러 왕조를 거쳐 특히 한나라의 통치사상이었던 유교사상과 45경이 중국의 통치이념과 교본으로서 왕조를 공고히 유지해왔다. 역사적 예를 볼 때 중국인의 성격에는 수동보수의 성향이 강하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꽌씨(关系: 關係)”는 실력이며 자산이고 또한 자본이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을 낮추고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광활한 대지, 수많은 인구, 다민족의 대국에서 사람에 대한 의심이 강하여 지연 및 학연 등이 중요하다. 중국인 사이에 꽌씨에 대해 유행하는 말이 있다. “만일 당신에게 꽌씨가 있으면, 누군가 당신을 통해 관례를 깨고 접근하여 일을 간단히 처리할 것이다.” 꽌씨학(关系)에 따르면 적은 투자로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왕도이며 첩경이다. 꽌씨에 관련된 매우 재미있는 7언시가 있다.

일을 하는데는 꽌씨에 따르며, 꽌씨가 있으면 꽌씨에 따르라, 꽌씨가 없으면 꽌씨를 찾고, 꽌씨를 찾기 어려우면 꽌씨를 사라 (办事都得冯关系, 有了关系靠关系, 没有关系找关系, 难找关系买关系)

중국에서 인맥과 꽌씨가 법제보다 더욱 효과적임으로 꽌씨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인은 처음 만나 알게 되고(認識), 두 번째 만나 깊어지고(熟人), 세 번째로 펑여우(朋友)가 된다. 중국의 꽌씨는 금전, 예물, 그리고 식사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飯局)”은 꽌씨의 시작이다. 식사를 통해 신용관계가 형성되고, 그러한 식사는 풍성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세계에서 음식을 가장 중시하며, 식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의식주(衣食住)”가 중국에서는 식주의(食住衣)”로 순서가 바꾸어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음식문화는 매우 풍부하다. 이는 중국의 역사, 지리, 다민족 거주와 관계가 있으며, 중국의 상이한 기후와 다양한 요리 재료가 중국의 풍부한 음식문화를 제공하는 토양이 된 것이다. 중국인은 음식의 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통하여 양생(養生)”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고() 달고() 쓰고() 맵고() () 다섯 가지 맛(五味)은 상호간의 조화가 중요하며 사람의 오장(五臟)인 심장 간 폐 콩팥 지라의 보양을 도와준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은 一物全體食의 관점에서 식재료 전체를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차()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녹차 홍차 화차 우롱차 등이 있으며 차를 좋아하는 이유는 갈증을 해소하고 소화를 돕고 몸의 신진대사를 도울 뿐만 아니라 술을 깨게하고 뇌를 맑게하며 기름진 식물의 체내 산성물질과 조절을 돕기 때문이다. 차는 신농황제 시기에 시작하여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병을 치료하는 약초에서 시작하여 점차 인생을 관조하며 수신과 수양을 하는 방법으로 발전하였다. 차를 마실 때는 먼저 향기를 느끼며, 그리고 색을 감상하고 천천히 맛을 느낀다. 차를 마시는 것은 중국인에게 인생의 도리를 느끼게 하는 일종의 생활방식이며 천천히 하자(漫漫來)”는 여유있는 마음상태를 갖게하는 풍속으로 대대로 전래되어 왔다.

5중국과 인연: 중국의 친구에서 저자는 먼저 어떻게 인간적으로 중국인을 사귀고 관계를 잘 유지해 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50년 지기 황정강(黃正鋼) 1930년 당시 국민당수도 남경에서 태어나 장개석의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하면서 타이완으로 퇴거할 때 가족이 타이완으로 이주하였다. 황은 타이완 국비장학생으로 저자와 고대대학원 정치외교학과 동기생으로 고대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상협교수 아래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에 유학한 후 현재 태국의 화교가 경영하는 정다그룹(正大集團)의 홍콩지역 책임자다. 이들은 서로의 자식들이 자기들을 중국 및 한국의 아버지로 부르게 할 만큼 신뢰가 깊다. 저자는 황이 정신 및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선량하고 사람을 대함에 열정을 갖는 깊은 의리와 따뜻한 정의를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두번 째로 저자가 중국에 대한 학문적인연이 깊은 것은 고대총장과 총리를 역임한 대학원 당시의 선생인 김상협교수의 마오쩌둥사상(毛澤東思想)” 강의였다. 1964년에 책으로 출판된 강의 내용의 핵심은 나폴레옹이 말한 중국은 잠자는 사자다. 일단 잠에서 깨어나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와 손자 병법에 나오는 먼저 적을 알고 자신을 알면 실패의 우려없이 백 번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강의는 저자가 중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계기를 갖게 하였다.

다음으로 저자가 중국에 대하여 정치적으로 인연을 갖게 된 것은 국토통일원장관으로 19854 24-26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된 비동맹운동 30주년 기념회의에 참가하여 적대관계에 있던 중국의 우슈에치엔(吳學謙) 외교부부장을 만난데서 시작되었다. 같은 해 3 22일 중국 북해함대 소속의 불만을 품은 2명의 사병이 어뢰정을 탈취하여 연료부족으로 흑산도 근해에서 표류 중에 있을 때 한국의 전두환 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신속히 처리하여 주었으며, 이에 대하여 우 부장은 저자의 질문에 앞서 이 사건이 한중 양국의 관계개선의 기초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저자와 우부장은 서신교류를 통하다가 1992 8 24일 한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한 후, 우부장이 저자를 최초로 중국의 국빈관 디아오위타이(钓鱼台) 18호에 초대하였으며, 그는 이후에도 저자를 중국이 신임할 수 있는 한국인으로 중국의 고위 인사들에게 소개하였다.

중국 인민대회당 건축에 참가한 철근공 출신인 중국인민영웅으로 1986년 서울의 아시안게임 중국 대표 단장인 중국의 제일 한국통장바이파(張百發)와의 만남과 그를 통한 덩샤오핑의 검소한 생활이야기, 중국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부장이며 북한통으로서 2003년 북한의 2차 핵문제로 인한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을 때 저자의 설득을 받아들여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하고 중국이 개최국이 되게한 다이빙궈(戴秉國)와의 이야기, 길림성 장춘시 출신으로 1998년 칭다오시장 및 중국공산당과 북한노동당 간 2011-2012전략대화 및 2013년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된 왕쟈루이(王家瑞)와의 인연, 1992 600명으로 구성된 요성경제대표단 한국방문과 요(瀋陽)의 한국기업전용공단을 건설한 웬셔전(聞世震)과 그의 한중관계와 남북관계를 암시하는 서예 이야기, 산둥성은 중국의 진시황이 2,200년 전 불노초를 구하려고 방사(方士) 슈푸(徐福)을 제주도로 보낸 발원지로 1억인구를 가진 중국의 두번 째로 큰 성이며 역사적으로는 한국타운인 신라방(新羅坊)이 있는 곳으로 성장 장다밍(姜大明)의 협력을 통하여 저자가 제주도 서귀포에 서복공원을 세운 이야기, 1992년 한중수교 후 초대 주한중국대사로 온 장팅옌(張庭延)과의 인연 및 한중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흉금을 털어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관계가 된 이야기, 그리고 리펑(李鹏) 전총리, 리커창(李克强)현총리, 장더장(张德江)정치국상무위원, 위정셩(俞正声)전국정치협상회의주석, 장보고의 후예 장가오리(张高丽)국무원 부총리, 왕민(王珉)요령성 당서기, 천정까오(陈政高)심양시 당서기, 차이리민(才利民)산동성 부성장, 뤄하오차이(罗豪才)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소속 중한우호협회장, 그리고 사천성 부성장 황샤오양(黄小样)과의 인연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들과의 관계를 한결같이 인내와 겸손으로 배려하고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6중국지도자와의 결연: 후진타오, 시진핑, 웬자바오에서 저자는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만난 계기와 그들의 리더십 그리고 이들에 의한 중국의 장래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피력하였다. 1995년 처음으로 중공중앙대외연락부 리슈징(李淑铮) 부장을 통하여 후진타오를 만, 그가 중국의 주석이 된 후 한국을 공식방문한 2005년에 여섯 번째로 만났다. 한중 간의 당 대 당 협력, 중경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발굴 및 복원문제, 국방장관회담, 안중근의사 유해발굴문제 및 제주도 서복공원 설립문제에 대하여 협의 및 진전을 보았다.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은 절강성 당서기였던 그를 2005 4월에 만나고 2009년 국가부주석으로서의 공식 한국방문과 2013년 주석이 된 후 금년 2014 5월 네 번째로 만났다. 원쟈바오 총리와는 2007년 처음 만날 때, 기지를 발휘하여 그로부터 제주도 서복공원(徐福公園)의 휘호를 받아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어떤 형태의 사람인가? 이들은 어떻게 13억 중국인의 지도자가 되었는가? 이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국을 이해하는 첩경인 것이다. 이들 또한 앞으로 세계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나이에서 11년이 앞선 후진타오와 젊은 시진핑은 모두 탁월한 재간과 실력을 갖추었다. 아울러 겸손과 봉사로 인민의 마음에 자신들을 깊이 각인시키고 있다. 이들은 지도자가 거쳐야 할 단련과 경험 및 시험을 통과하였다. 또 기타 지도자들로부터 많은 지원과 협력을 받았다. 그리고 상대 경쟁자들에게 승리를 하였다.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공직에서도 40대 초에 비슷하게 시작하였다. 후가 외유내강과 청렴검소한 젠틀맨의 이미지를, 시는 덕과 지혜를 겸비하고 능히 머리를 능히 숙이고 펼 수 있는 충후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시진핑시대의 중국은 어떠할까? 중국의 양대 강 양쯔(長江)와 황허(黃河)는 각자의 특징이 있다. 황허는 그 흐름이 세차게 흘러 마치 협객과 같다. 양쯔는 그 흐름이 유유하여 마치 군자와 같다. 중국사회도 지금까지의 휘몰아치는 발전의 단계에서 안정추세로 전환하려고 할 것이다. 중미관계는 권력전이와 함께 양국 간에 모순과 마찰이 일어날 것이나 중국은 안정과 평화를 추구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 및 한국과 같이 대통령중심제의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의 카리스마 리더십과는 달리 시진핑시대는 권력이 집단지도체제로 행사되고 있다. 시진핑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사람됨이 겸손하고 포용과 협력단결을 잘하여 정치국상무위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잘 하도록 할 것이다.

시진핑의 리더십은 몇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과단성과 강인함이다. 위기시에는 정책결정을 하는 데 결단성이 있다. 둘째, “탁자치기이론(拍桌子)이다. 지도자로서 시찰이나 정책결정에 탁자를 쳐 실무자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한다. 의도적으로 이렇게 함으로써 실무자들로 하여금 각성하게 하는 이성을 가진 분노를 보인다. 셋째, 과거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정책(韜光)이 아니라 G2국가로서 해야할 때 실행에 옮기는 정책(有所作爲)을 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과거의 인내하는 정책에서 투쟁은 하되 파괴 또는 전쟁으로 가지않는 정책(鬪而不破)을 취할 것이다. 후진타오에 비하여 시진핑은 덩샤오핑과 부총리를 지낸 부친인 시중쉰(习仲) 및 각파의 튼튼한 정치적 후원으로 강한 발언권이 있으며, 국내정치에서는 공산당의 지도력을 강화하고, 대외정책에서는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하여 적극적이나 신중한 대응을 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은 앞으로 10년 간 한국에 대하여경제 정치 군사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시진핑시대는 한국에 어떠한 의미를 주는가? 우리는 어떻게 양국관계를 처리하여야 하는가? 친구는 바꾸어도 이웃은 바꿀 수 없다. 한중관계에서 한국이 중국과 훌륭한 협력의 친구가 되면 미래는 무한광명이 될 것이나, 중국이 한국의 적으로 변하면 한국의 미래는 암흑의 상태가 될 것이다. 이 시대 한국이 직면한 주요한 과제는 중국과 우호관계를 강화하여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고 우리의 숙원인 한반도통일의 대업을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과 양국관계를 잘 처리하면 한반도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암묵적인 협력을 얻게 될 것이다. 숙원인 한반도 통일을 위하여 우리는 국익의 관점과 비이데올로기의 시각에서 대미 대중정책을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 한중 양국 정부는 대북한 정책에서 공히 협력을 통하는 것이 관건이다.  

7한중우호활동과 민간외교에서 저자는 한중친선협회회장으로 이 협회가 1994년 설립된 후 지금까지의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리샤오린(李小林)회장>과 그 산하의 중한우호협회<왕지엔저우(王建)회장>”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있다. 특히, “중국을 알고, 중국과 협력하자는 슬로건으로 창립20주년이 되는 해에는 [한중미래논단], [초당파의원대표단의 중국방문], [경제 사회 문화교류], 그리고 [중국 각지회와 협조 및 현지와의 우호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중수교 후 3-4년이 되는 해에 중국외교학회 리우슈징(述卿) 회장과 대화를 통하여 2,200년 전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방사 슈푸(徐福)를 한반도에 보낸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를 중국 지도자가 한반도를 방문한 역사적 연원으로 판단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아울러 서귀포에 서복공원 조성사업을 결심하고 제주도와 산동시 그리고 한중 양국정부의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협력을 얻어 2005 10월에 서복공원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서귀포의 어원은 슈푸가 진시황의 명을 받아 500 여명의 남녀 청소년으로 거대한 선대를 조성하여 산동성 롱커우를 출발하여 남해와 거제도를 거쳐 제주도의 한라산에 도착하였다. 불로초를 찾아서 서쪽인 중국으로 돌아가는 출발지가 이곳으로 서귀포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하게 된 것이다. 서복공원의 조성은 한중우호발전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중국관광객 유치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후진타오 시진핑 등 서복공원을 방문한 중국의 지도자들은 그후에 관운이 좋아 승승장구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제주도는 중국인들이 해외의 제일 먼저 가보고 싶어하는 지역이 되었다.

2005년 한국정부는 한국광복60주년기념사업으로 안중근의사유해발굴을 결정하였다. 이는 하늘에 떠돌고 있는 안의사의 영을 위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민족정사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 동경에서 독도문제와 안중근의사를 연구하는 한국연구원의 최서면(崔書勉)원장을 만나, “안중근의사와 이순신장군은 한국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웅으로 이 두분의 유적과 유산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의사는 1909년 중국의 하얼빈역에서 당시 한국을 침략한 원흉 이또오히로부미(伊藤博文)을 총살하고, 이듬해 3 26일 여순감옥에서 일제에 의해 비밀히 처형되었다. 안의사는 처형 전 최후의 유언에 조국이 광복된 후에 내 시체를 고향에 운구하여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최원장이 면담한 당시 10세이던 여순감옥 옥장의 딸의 증언을 토대로 한국의 통일부장관과 북한의 담당자 그리고 중국의 국가부주석 후진타오 등 국내의 정파를 초월하고 남북의 괴리를 넘고 중국의 협력을 얻어 최원장과 함께 현지를 방문조사하였다. 현지의 상태가 소멸되기 이전에 안의사의 유해가 발굴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김구선생이 1948년 김일성과 남북연석회의를 할 떄, 김일성에게 소련에 협력을 요청하였었다. 당시 소련이 여순감옥을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장인 제8부록에서 동북아경제공동체에 대한 저자의 구상을 밝히고 있으며, 대학 시절인 1960년의 4 19의거의 전초가 된 고려대학교의 4 18학생운동에 학생대표로 참가한 내용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한 인간의 이상과 행동 그리고 사회를 위한 봉사를 느낄 수가 있다. 세계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그 중심이 EU NAFTA 그리고 미국에서 아시아로 흐르고 있으며 동북아가 그 추세(trend)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동북아경제공동체에 대한 구상은 이미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간에 여전히 존재하는 냉전상황, 지정학, 역사, 상이한 정치체제,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중국과 일본간의 갈등 및 북핵문제 등이 장애요인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다른 지역에 비해 통합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이 지역이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경제가 활발하고 시장의 잠재력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역의 국가들 간에는 보완성과 경쟁 및 무역구조가 지역경제공동체의 핵심이 될 수가 있다. 한중일의 첨단기술과 자본 및 발전경험, 북한 러시아 몽고의 풍부한 자연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이들 국가들간의 지리적 인접성과 역사적 교류 및 공동의 동아시아 정체성 등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동아시아경제공동체의 방향은 먼저 한중일이 선도하여 동북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미 이들 국가 사이에 한중일정상회의가 연례적으로 열려왔으며, 한중일협력사무소도 설립되었다. 한중일협력의 관건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경쟁으로 인하여 한국이 조절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이들 국가들 간의 공동이익의 추구는 윈-윈하는 협력기회를 증가시킬 것이다. 한중일의 경제협력, 러시아 북한 한국을 잊는 석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 구상, 중국의 창지투개발전략, 북한-중국의 개발협력 등은 한반도 중국 러시아가 만나는 지역이 경제공동체의 중심이 되며 이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 “중국-북한그리고 러시아-북한의 양자협력에 한국이 참여함으로서 ---- 3자협력으로 확대되고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협력으로 발전할 수가 있다. 이러한 협력은 한반도의 철도 육로 해상을 통한 물류의 확대를 가져오며 중국상품이 한반도를 통하여 태평양에, 일본상품이 한반도를 통하여 중국을 거쳐 유럽에 도달 할 수가 있다. 이는 나아가 동북아지역국가들을 위한 동북아개발은행의 필요성이 대두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조율하는 규칙 및 제도(norm and institution)”가 필요하게 되고 이는 북한을 참여와 개방으로 유도할 수가 있다. 이를 위한 초기 단계가 한중일이 중심이된 삼정론(三鼎論)이며, 이는 이미 100 여년 전에 안중근의사가 동양평화론과 동양평화회의체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동북아경제공동체의 방향 아래 이를 실현하려면 지역안정이 그 기본이다. 안보문제가 가장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문제와 내부문제가 그 핵심이다. 북한의 변화,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 그리고 동북아지역의 안보협력이 경제협력과 평화를 실현하는 필요조건이다.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시장을 개방하며 동북아경제협력에 참가하는 국제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면 동북아경제협력은 탄력을 받을 것이며, 동북아는 한국-북한-중국-일본에 의한 “4륜차에 의하여 발전할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책임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 “무엇이 문제냐?”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대하여 이 지역의 구성국가들이 답해야 하는 것이다.

고려대학교는 4 19행사 대신에 하루 앞선 날에 “4 18행사를 한다. 이는 1960년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 3 15일 정 부대통령선거를 부정한 방법으로 치렀으며, 시위도중 실종된 김주열열사의 유해가 낚사꾼에 의해 발견되고, 이어서 마산시민의 분노를 이어 국민감정으로 비화하였다. 이에 4 18일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학생회장인 저자 및 자유 정의 진리의 민족고대를 강조하는 3,000 여명의 고려대생들이 교문을 나와 구속자 석방과 대통령 및 장관의 불법선거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시내로 행진하였다. 다음 날인 4 19일 학생과 시민에 의한 시위, 전국적인 시위, 그리고 4 25일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이어 경찰력의 붕괴와 군의 이탈로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를 하였다. 186명의 희생자를 낸 4 19의거는 민주민족혁명이었다. 그러나  4 19정신의 최종목표는 남북통일이며, 따라서 저자는 4월의거는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2007 8,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치우시보(環球時報)의 저명한 인물을 소개하는 [환구인물]에서 저자 이세기를 한국의 정계가 공인하는 최고 중국통으로 소개를 하였다. 1985년 통일부장관으로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 참가하여 적대국 중국의 외교부장 우슈에치엔을 만나 교류를 시작한 후 중국통의 길을 착실히 걸어왔다. 1980년대 체육부장관으로 한중체육교류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위한 협력 등 그가 맏은 분야에서 중국과 신뢰의 협력관계를 꾸준히 쌓아왔다. 특히, 2001년 북경대학의 연구교수를 마치고 이듬해 한중친선협회 제3대회장에 취임하여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본격적인 민간외교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의 활동과 원대한 꿈중국과 한반도 통일--은 진행중에 있다. 이를 중국 표현을 빌리면 늙은 천리마가 아직 마구에 누워있으나, 천리를 달리고 싶어한다 (老驥伏枥, 志在千里).” 장팅옌 중국대사는 그를 영원히 잊지못할 것(永生难忘)”이라고 한다.

III

이 책에 흐르는 주된 느낌은 지식, , 열정, 행동,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정성이 담긴 배려이다. 한중관계가 20년이 넘은 성년이 되기까지 짧지 않은 기간에 한국과 중국은 양자간 뿐만 아니라 다른 제3자로 인하여 양국 간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럴때 마다 저자는 중국과의 관계의 문제에 직면하여 드러나지 않게 조율하고 해결을 하였다. 2003년 북한이 핵문제로 인하여 북미관계 및 동북아에 긴장이 고조될 때 중국을 통하여 북한이 6자회담에 참가하고 중국이 이를 개최하게 하는 데 역할을 하였다. 2004년 동북공정문제가 한국과 중국 사이에 첨예한 문제가 되었을 때 그는 이는 역사문제로 학자에게 일임하도록 하는 후진타오의 메세지가 나오도록 하였다.

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한반도와 중국과의 관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이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1장과 제8장은 과거와 미래를 다루는 주제로서, 자신의 학자적 이론과 본인이 실제의 경험에 바탕을 둔 미래에 대한 구상으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하였다. 둘째, 저자는 진정한 중국통이다. 중국지도자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이정도로 깊이 있게 쓰려면 그들과의 깊은 인연(꽌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깊은 관계를 위해 그는 원대한 꿈을 갖고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관계가 한중간에 막힌 곳을 소통하는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셋째, 이 책은 중국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며, 사업을 모색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본의 입문서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인간관계, 사회문화 정치경제 등 각 분야에 경험담이 녹여져 있어서 중국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큰 감동을 주고, 앞으로 경험할 사람에게는 훌륭한 길잡이의 역할을 할 것이다.

넷째, 중국과의 훌륭한 외교관계를 보여주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안정된 동북아국제환경에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모색하는 우리외교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대국 중국이 행동에 있어서는 매우 섬세하고 민감하게 움직이는 것을 잘 파악하고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굴기하는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투쟁은 하나 파괴하지는 않는 전략(鬪而不破)”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는 미국과 안보를 위해 동맹관계을 맺고 경제발전을 위해 중국과 동반자관계를 맺고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미관계가 극단으로 가지 말아야 하고, 나아가 우리는 거대한 양국이 협력하게하는 데 조율자의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우리 외교는 중국과 관계가 밀접해지는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에게 저자가 해온 것과 같이 중국과 미국 양국 관계에서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일본과 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가는 것은 일본이 중국관계에서 저자와 같은 중국통이 없는 것도 한 원인이 된다.

다섯째, 이 책은 중국의 대북관계 및 외교정책결정과정과 중국의 통치조직을 연구하는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의 중국의 정책결정자들과의 관계를 추적 및 연구해보면 중국의 정책결정과정을 이해할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남북문제의 안정과 평화 나아가 한반도통일을 위하여 어떻게 중국과 관계를 유지발전해야 하는 가를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는 요구에 직면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통합을 구상하고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전략과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인생에 옳은 친구하나면 성공이고, 10년을 가치있게 살았으면 성공이라는 말이있다. 저자는 그러한 조건을 이미 다 갖추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역사는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고 기록되는 것이다. (홍정표, 미야자키국제대학, 2014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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